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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옛터 해석 그리고 의미.외로운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

징콩칸 2022. 11. 2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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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옛터 가사 해석 그리고 의미?

황성옛터

황성옛터는 마음을 울리는 곡입니다.

서양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고도 하지만 동양에서

특히 한국에서는 새들이 운다라고 많이들 표현 합니다.

 

그 만큼 노래와 울음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울음(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노래가 최고이며,

울음(슬픔)을 달래주는 방법으로도  노래가 최고입니다.

너무나 힘든 인생 삶.

 

요즘 대한민국 사회는 이혼률이 급증하고 자식을 낳아도 1명만 낳고, 아에 결혼을 안 하는

비혼의 문화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인가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독거노인 뿐만 아니라 독거청년 독거처녀 독거총각이란 말도 나오듯

, 외롭게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대한민국 가구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히 결혼을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불행해 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다 가 다 이런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점점 고독해지고, 고독해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사이버 세상에 의지하게 되고..

(사이버 세상이란 인터넷 게임.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으로 해소하고 있죠)

 

어느날

홀로 외롭게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본인 스스로가 쓸쓸하단 생각이 들어, 남 몰래 서럽게 울기도 할 때가 있기도 할 겁니다.

 

황성옛터 가사 의미

황성옛터는 일제점령기였던 1928년 전국을 돌아다니는 극단의 작곡가 전수린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작사는 역시 같은 극단의 무대감독이자 작곡가인 왕평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며

최초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애리수(이음전)이 불렀습니다.

이애리수

그후, 가수 남인수 님이 1950년대 다시 황성옛터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국을 유랑했던 유랑극단(조선연극사/朝鮮硏劇舍) 은 개성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중

북한 황해북도 개성에 있는 옛 궁궐이 있는 장소  만월대를 방문 했는데,

고려의 화려했던 궁궐은 없어지고 황량한 장소로 변해버린 그 쓸쓸함에 만든게 된 곡이

바로 황성옛터 라는 곡인데, 

 

일제 강점기 당시

유랑극단들은 일본에 은근히 대항하며, 무지한 국민을 개몽하기 위한 활동도 했었는데,

전국을 유랑하며 떠도는 자신들 즉, 나라 잃은 국민의 처지를 황성옛터에 빗대어

만든 곡이다.

 

원래 원 제목은 황성의적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1901년 만들어진 일본의 가곡 황성의달(荒城の月)과 비슷한 이름으로 오해 받기는 했지만,

 

황성의적 이라는 뜻은 원래 노래를 만든 취지를 살려서

황성(皇城)의 적(敵)  즉, 우리나라 황궁의 적 = (일본을 가르키는 것) 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

-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일본 때문이다.라는 취지-

 

황성(荒城) = 황량한 성, 적(跡) = 흔적,자취 라는 뜻으로 황량한 성의 흔적 이라는

뜻으로 곡 이름이 만들어 졌기에 일본가곡의 황성의달 에 영향을 받았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가  나중에 황성옛터 로 바뀌게 되었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나 지금의 부강한 나라지만,  혼자 살고 있는 시대나 

비록 강도와 의미의 차이는 있겠지만,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한 개인으로 볼 때, 그냥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그랬듯, 지금도 황성옛터를 들으면서

여전히 위안이 되는 것을 보면, 비록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라고는 하나

우리의 인생과 함께한 명곡 이상의 노래로

단순 유행가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 황성옛터 곡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남인수 황성옛터, 이애리수 황성옛터는 자주 들었으니.

이번에는 심수봉 황성옛터 를 준비했습니다.

황성옛터 심수봉

마음이 황량할 땐, 신나는 음악도 좋지만,

오히려 더욱 그 슬픈 감정을 돋우는 것도 좋습니다.

남인수 황성옛터

과거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의 음악은 조금 애잔한 음악이 주류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슬픔에서 벗어나  더욱 더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